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페르시아 전쟁 (문단 편집) === 메소포타미아 전역 === 이듬해 겨울, 이라클리오스는 할리스 강으로 퇴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뇌물을 주어 잠재워둔 아바르 족이 트라키아를 침공했단 소식이 들려왔고, 그는 급히 카파도키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수도로 향해 그들과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뇌물을 보낸 후에야 그는 다시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 623년 3월 봄 그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출병했고 [[호스로 2세]]는 역시 휴전을 거부하고 전쟁을 속행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5천의 군사를 새로 모집한 이라클리오스는 트레비존드를 거쳐 아르메니아로 진격했고 페르시아의 성지인 간자크를 향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드빈을 함락한 동로마군 앞에 페르시아군이 나타났지만, 4만의 병력밖에 없었던 호스로는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명령을 내렸으며 페르시아의 성지는 그대로 파괴되고 철저히 약탈당하였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방해로 그는 수도인 [[크테시폰]]까지 향하지 못하고 이듬해 겨울 아르메니아로 퇴각해 군세를 보충할 수 밖에 없었다. 624년 봄 이라클리오스는 재출병했지만 병력을 보충한 페르시아의 방해로 진격은 더욱 힘들어졌다. 메소포타미아와 메디나에서 3회에 걸친 대규모 회전이 일어났고 이는 모두 동로마의 승리로 끝났지만, 페르시아의 끈질긴 추격으로 결국 황제는 철군해 반 호수에서 겨울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라클리오스는 겨울을 이용해 재점령한 아나톨리아와 아르메니아를 군사테마화하는 데에 주력했다. 하지만 암울한 소식도 전해졌는데, [[고트족]]이 로마 제국의 스페인 지역 최후의 요새인 카르타고 노바를 점령했다는 소식이었다. 625년 봄 황제는 재차 출병했고 저항없이 [[티그리스 강]]을 도하해 페르시아의 주요 도시 아미다를 함락한 후 콘스탄티노플에 자신의 안위를 전하였다. 페르시아군은 동로마의 진격을 우려해 유프라테스의 다리를 파괴했지만 여울목을 건넌 동로마군이 추격해오자 사루스 강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페르시아군은 침착하게 대처해 샤흐르바라즈의 지휘 아래 동로마군을 기습했고 동로마군은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라클리오스는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군을 독려했고, 저녁 때까지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지만 결국 동로마군에게 승리가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